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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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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수도회의 한국 초청은, 6.25사변 당시 미군종신부로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1951년 장렬하게 전사한 카폰 (E.J Kapuan) 신부의 기념 사업을 한국 현지에서 시작하기로 미군종신부단이 발의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군종신부단에서는 그가 장렬하게 전사한 한국에 카폰 신부를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 사업을 당시 광주교구를 맡고있던 미국주교 하롤드 헨리(Harold W.Henry) 교구장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현대주교는 이 정신에 적극 찬동하고 적절한 사업을 물색하던 중 한국에 가장 절실하고 긴요한 사업은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사업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고, 일본에 진출해 있던 살레시오회를 초청, 한국에 돈ㆍ보스코 정신에 따라 청소년을 교육하는 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마침 패기와 열정에 넘친 38세의 마(Martelli, 馬) 신부가 당시 일본 관구장 탓시나리 신부의 임명을 받고 1954년 5월에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마신부는 1954년 광주시 중흥동 371번지에 대지 2만 5,000여평을 매입, 한국땅에 최초로 살레시오 교육사업 터전을 만들었다. 그 후 1955년 9월까지 4명의 회원이 더 내한, 도합 5명으로 일본관구 소속 광주수도원이 이루어지고 초대 원장에 마르텔리 신부가 취임, 곧 정지작업을 완료하고 김창섭(구 아세아 극장주인) 씨를 선정하여 학교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당시 CAC사령관이었던 송호림 사령관이 군장비를 동원해 주었고, 한국인들의 따뜻한 배려로 성금이 모금되고 살레시오회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우선 816평의 12칸 교실을 신축, 1956년부터 중학교 문을 열어 초대 교장에 마신부가 취임하고, 첫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1959년에는 고등학교를 병설하여 중·고 초대 교장으로서 살레시오 중·고등학교를 단시일 내에 사학 명문으로 만들었고, 호남교육의 전당으로 자리잡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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